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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갈까? 말까? 고슴도치 딜레마에 빠진 현대인

박지현 기자 |2020-12-1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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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고등학교 때 절친했던 친구 한 명이 떠오른다. 정확히 말하면 대학생이 되고 나서 더 친해진 고등학교 동창이다. 학창시절 뒷자리에 앉아 친분을 쌓았던 친구와는 졸업 후 연락이 끊겨 멀어졌다 먼저 건넨 기자의 연락에 관계는 다시 돈독해지기 시작했다.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당시에는 잘 몰랐던 서로의 입맛과 취향까지 알게되면서 비슷한 부분이 많음을 깨달았다.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만 봐도 어떤 기분인지 알아챌 만큼 가까워졌다. 흔히 말하는 동네 친구였기에 나올래?’라는 간단한 연락에도 항상 흔쾌히 응했고, 만나면 항상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서로의 인간관계나 연인의 문제로 힘들 때도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누고 술 한잔 기울이며 깊은 속내를 털어놓기도 하는 찐친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너무 빈번하게 일상을 공유한 탓일까, 친구와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선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인간관계가 처음과 같을 수 없듯이 나이가 들면 개인의 성향이 짙어져 생각의 차이가 생기기 쉽다. 


그러다 보니 가벼운 충돌이 잦아졌고 생각이 다르면 서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보였다. 항상 쏟아내듯이 고민을 털어놓던 친구의 행동도 점차 강도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기자나 친구 또한 극한의 상황이 아닌 이상 모진 말을 하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알면서도 관계를 위해 감정을 삭혔다. 하지만 마음속에 쌓인 응어리로 갈수록 서로를 대면하는 게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만남이나 연락의 횟수도 이전보다 훨씬 줄었다. 학창 시절의 친구는 평생 간다는 말도 있듯,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었지만 관계는 각자의 가치관에서 오는 충돌로 한쪽은 스트레스를, 한쪽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쉽게 상처받지 않고 외로움을 덜 타지만 스트레스받는 것은 극도로 싫어하는 기자와 쉽게 상처받고 외로움도 많이 타는 스타일인 친구사이에서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쉽게도 잘 맞는다고 자만했던 둘의 성향은 예상과 달리 정반대였던 것이다.


20대 후반인 지금에야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기에 당시의 상황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길 수 있었겠지만, 한창 불안정하고 예민했을 20대 초반에는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할 만큼 성숙하지 않아 감정이 앞섰던 기억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에서 애착을 형성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기존의 인간관계도 어려운 마당에 새로운 관계를 맺는 두려움과 어려움의 정도는 더하다. 관계가 깊어지는 데서 오는 두려움과 거리 유지로 느끼는 어려움은 또한 누구나 빠지는 딜레마다. 1인 가구, 혼술, 혼밥, 홈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도 전부 이 딜레마를 반영한 말이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다가가면 상처받고 멀어지면 외로운 정서적 불편함 때문에 계산적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경우도 늘고 있다.

 

고슴도치 딜레마를 탄생시킨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염세주의 철학자로 까칠한 성격에 혼라이프를 즐겼다고 한다. 타인과 합석하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식당에 혼자 가면 2인분을 주문해 자신의 앞자리에 뒀고, 수많은 유명 저서를 출간해 명성을 얻었음에도 무명생활을 지속할 정도로 지독한 성격의 1인 가구였던 것이다.


자립과 일체감이 양립하는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부른다. 이 말은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가 발표한 저서의 고슴도치 우화에서 비롯됐다. 내용은 이렇다. 추운 날, 고슴도치가 온기를 나누려 모였다가 서로의 침에 찔려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추위로 다시 모이는 현상이 반복됐다. 이 과정을 통해 고슴도치들은 바늘이 없는 머리 부분을 맞대 온기를 나누며 잠을 자는 것이 서로 최소한의 거리두기 방법임을 발견했다. 여러 번의 고민 과정 끝에서 찾은 적정거리인 것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이 현상은 고슴도치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대입할 수 있다. 우리는 취향이 잘 맞거나 자신과 닮아서 혹은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을 줄 것 같아서 등 필요에 의한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선을 넘고 서로의 삶에 관여하는 순간 상처를 주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멀어지면 삶이 외로워질 수도 있다.


직장도 고슴도치 딜레마가 심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부하직원과 친해지면 만만한 선배일까 혹은 관계에서 무작정 거리를 두면 안 통하는 선배로 여겨질까 걱정하고, 동료 사이도  연락을 자주 하면 부담스러울까 하다가도 너무 안 하면 매정해 보일 것 같은 생각을 하게된다. 이처럼 고슴도치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의 감정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온기를 유지할 수 있는 중재선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일단 자립과 일체감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적정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온기를 주기 위해 다가간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는 가시가 돼 상처를 줄 수 있다. 타인을 대할 때면 한 번쯤 내가 관계에서 상대를 어떻게 대하고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대방의 고통을 나누거나 서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외로움과 상처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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