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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코미디언 박지선을 추모하며

관리자 |2020-11-0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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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박지선씨와 그의 모친 빈소가 2일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연합)


어제는 가슴이 먹먹한 하루였습니다. 갑작스럽게 코미디언 박지선씨의 죽음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한 지인의 메시지를 통해 그의 비보를 접하고 곧바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벌써 그곳엔 수백개의 속보가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사회부 기자로 있을 때 경찰과 경찰서 출입기자들이 초동 출동해 현장을 싹싹 훑고 간 뒤의 스산한 장면처럼 박지선씨 죽음의 기사는 이미 수많은 댓글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내용도 전부 대동소이합니다. ‘검색어 따먹기’(표현이 거칠어서 죄송합니다)에 도가 튼 편집자들은 내용이 거의 똑같음에도 제목은 다르게 뽑는 신기한 '작문실력'을 시전합니다. 사람들의 궁금증은 점점 더 커지는데 속보기사는 겨우내 입고 세탁소로 보내질 운명에 처한 낡은 외투처럼 이미 구문이 돼 버립니다. 사람들의 호기심은 사나흘 굶은 사자무리가 먹이를 찾아 헤매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같은 기사를 계속 클릭하며 혹시라도 다른 내용이 있는지 습관적으로 검색을 해보게 됩니다.

 

한시간쯤 지났을까. 메일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인터넷신문위원회가 긴급 발송한 박지선 사망사건 보도 관련 중앙자살예방센터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메일이었습니다. “개그우먼 박지선 사망사건 보도와 관련해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아래와 같이 협조 요청이 있어 이를 알려드립니다. 위원회의 자율심의 참여서약 매체에서는 해당 사건 보도 시에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준수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잠시 구체적인 내용을 한번 보겠습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5가지 원칙 준수 요청

한국기자협회·보건복지부·중앙자살예방센터(2018)자살보도 권고기준 3.0

 

1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등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2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습니다.

3자살과 관련된 사진이나 동영상은 모방자살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유의해서 사용합니다.

4자살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 자살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결과와 자살예방 정보를 제공합니다.

5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합니다.

 

이와 함께 언론에 대한 간곡한 부탁의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현재 보도되고 있는 개그우먼 박지선님 사망사건 보도에 신중을 기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현재 고인의 사건은 극단적 선택으로 확정된 사항이 아니기에, 사건조사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유족 등이 상처받지 않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라며, ‘극단적 선택등 특정 사망원인을 암시하는 표현은 삼가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또한, 극단적 선택으로 확인이 되더라도 고인이 생전에 사랑받던 유명인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공인임을 감안하여 보도 시 자살방법 및 수단, 유서의 내용의 언급을 자제해주시고, 자살예방상담 안내문구 등을 함께 안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유명인의 사망사건에 대한 보도는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클 수 있다는 점에서 보도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사망사건을 보도하는 경우에도 고인의 인격과 유족의 사생활 보호를 배려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언론에 대한 권고사항을 다소 장황하게 쓴 것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는 유명인들의 자살보도 행태가 하나도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의 권고는 오로지 권고일 뿐, 언론의 속보기사에는 그 어떤 권고사항에 대한 배려나 조심성은 별로 없어보입니다.

 

사실 전문가들은 자살사건의 경우 언론의 속보경쟁이 잠재적인 자살자들에 대한 증폭효과를 상당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자살은 베르테르 효과로 대변되는, 전염성이 강한 질환으로 분류됩니다. 특히 사회지도층이나 유명인의 자살은 전염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2008년 일어난 최진실 자살은 그 직후부터 이듬해까지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습니다. 요즘 교육계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바로 내년에 청년층 자살이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2020112일 자연건강인 ‘[긴급진단] 내년에 청소년 자살률 크게 늘어난다?’ 기사 참조). 지금 교육계에서는 박원순 효과를 우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무분별하게 보도한 언론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올 상반기까지 청소년 자살은 평년보다 적었습니다. 그러나 하반기 이후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온라인 수업 전환 후 자살생각을 경험한 청소년은 20%, 사이버 폭력을 경험은 48.3%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온라인 수업 시행 전인 지난 2019한국 청소년 건강행태 조사 및 사이버 폭력 실태조사(한국청소년패널조사) 결과, 자살생각 13.1%, 사이버폭력 경험 19%와 비교했을 때 크게 높아진 수치입니다. 전문가들은 "언론이 사회지도층 인사나 유명 연예인 자살의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아무런 경계 없이 마구잡이로 그 소재를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코미디언 박지선씨의 죽음에 대한 속보는 수백, 수천개의 동어반복 기사로 뒤덮였다가 다음날 색다른 뉴스 하나로 인해 그 천편일률 행진이 깨졌습니다. “[단독] 박지선 엄마 유서 피부병 힘들어한 딸만 보낼 수 없다’”라는 C일보 기사입니다. 굳이 실명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K기자가 ‘2020.11.03. 01:00’에 입력한 기사에는 모친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의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C일보는 본지 취재 결과를 내세우며 단독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습니다.

 

개그우먼 박지선(36)씨가 2일 자택에서 모친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된 사건과 관련, 본지 취재 결과 모친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엔 딸이(박씨가) 피부병 때문에 힘들어했으며, 최근 피부병이 악화해 더 힘들어했다. 딸만 혼자 보낼 수 없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현장에는 박씨 모친이 쓴 것으로 보이는 노트 1장짜리 분량의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 메모에는 딸이(박씨가) 피부병 때문에 힘들어했으며, 최근 다른 질환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피부병이 악화해 더 힘들어했다. 딸만 혼자 보낼 수 없다. 남편(박씨 아버지)에게 미안하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박씨는 2014년 인터뷰에서 햇빛에 노출되면 가려움이나 발진이 나타나는 햇빛 알레르기를 앓고 있으며, 피부가 민감해 화장(化粧)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밝힌 적이 있다. (중략) 모녀의 시신에는 사인(死因)을 추정할 만한 뚜렷한 단서가 남아 있지 않았으며, 경찰은 일단 음독(飮毒)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사는 전문가들이 권고한 2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습니다라는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습니다. “5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합니다라는 조항도 심각하게 거스르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이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스런 이야기도 단독이라는 단어로 포장돼 세상에 뿌려집니다. 이것은 유가족에게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필자 또한 기사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지만 한국의 언론은 그 본령의 의무와 책임을 너무도 쉽게 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론의 자유’라는 말이 무분별하게, 마음대로 써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사회가 그들의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자유를 인정해주는 것은, 검증되고 절제된 기사가 전제되었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살사건 보도에 대한 언론의 ‘2차 가해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들 또한 그 선정성에 중독돼 감각이 점점 더 무뎌지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신문위원회의 자살보도 권고기준긴급 메일을 과연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따르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코미디언' 박지선씨의 죽음을 접하며 하루종일 가슴이 먹먹했던 것은, 딸과 같이 세상을 등진 그의 어머니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자식의 고통을 저승에게까지 따라가서도 나누고 싶은 애절한 부모의 마음이 너무도 슬펐습니다. 동시에 그의 죽음이 미모의 관점에서 회자되는 우리의 외모지상주의 행태에 대해서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저 또한 박지선씨의 죽음을 외모와 연결시켜 본 것을 반성합니다. 어느덧 우리는 언론의 송곳같은 자극 기사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상업적인 보도와 그 선정적인 시각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박지선씨 사건 보도에 대한 권고사항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평범한 명제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지난 2015223EBS ‘지식채널e’과의 인터뷰에서 박지선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남을 웃길 수 있다는 게 제일 행복해요. 앞으로도 어떤 선택을 하든 저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겁니다.”

 

그가 저세상에서는 행복한 길을 찾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2012년 4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마음으로 듣는 수화 토크 콘서트'에서 개그우먼 박지선이 특강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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