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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슬로 시티를 구현하는 시즈오카의 작은 도시 '가케가와'

박지현 기자 |2020-10-0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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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비티 재팬에서 진행하는 가케가와 찻잎 손 따기 체험 플랜에 참여한 사람들. 가케가와는 일본 최대의 녹차 생산지 중 한 곳이며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슬로시티다. (사진=Japan activity 홈페이지)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서울 사람들이 무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겨야 살아남는 무한 경쟁 사회와 빠름을 중요시하는 초 시대가 사람을 냉정하게 만든 탓도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최근 슬로 라이프를 추구하는 듯한 동네 한 가게가 사라지고 빛의 속도로 대체된 프랜차이즈 가게를 보며 온갖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부진한 수입때문에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것일까', '값비싼 서울 땅에서 가게 하나 사라지는 것쯤은 당연한 일인가'.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테지만 물질적인 조건이 충족되지 않다면 서울에서의 슬로 라이프는 불가능할 것 같단 결론을 내며 몰라보게 변해버린 가게 앞을 지나쳤다.

 

이렇듯 생산성 지상주의, 물질 만능주의로 점철된 사회에서 슬로 라이프의 가치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슬로 라이프는 고정된 현대 사회의 바쁜 생활 태도를 배격하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기다림, 느림의 철학을 실천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대형 쇼핑몰같이 편리함을 제공하는 거대 외부자본의 유입 금지를 들 수 있다. 수익창출과 편리함이 우선인 수도권 도심에서 슬로라이프를 기대하기란 힘든 일이다.




지중해의 보석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포지타노(Positano)는 슬로시티의 시작점 중 한 곳으로 유럽인들의 휴양지로 손꼽힌다. 사진 속 장소는 포지타노 마을의 메인코스 절벽마을.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생산 만능, 물질 만능에 반기를 드는 슬로시티 운동은 1999년 이탈리아의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 ‘포지타노(Positano)’, ‘오르비에토(Orvieto)’, ‘브라(Bra)’ 4개 도시에서 시작됐다. 슬로시티 창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제 슬로시티 연맹(International Cittaslow Alliance)은 자연과 전통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지역을 슬로 시티로 지정하며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국제슬로시티연맹의 공식적인 인증은 받지 않았지만 슬로시티 구현을 위해 자신들만의 고유한 이념을 추구하는 마을이 있다. 바로 일본 시즈오카에 위치한 가케가와(かけがわ).

 



시즈오카현 후지시에 위치한 '후지 화조원'으로 일년 내내 각양각색의 꽃과 새를 관람할 수 있다. (사진=후지 화조원 홈페이지)



후지 화조원에서는 30종류의 조류를 관찰할 수 있다.  (사진=후지 화조원 홈페이지)


가케가와시는 일본 혼슈 주부지방, 시즈오카현에 위치한 지방도시다. 인구는 총 114,351(2020년 9월 기준)으로 현 내에서 유수의 상·공업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온천마을과 화조원 등 자연상태를 그대로 살린 관광지가 많아 외부 방문객도 끊이지 않는다. 주요 산업은 농업이며 일본 최대 규모의 녹차 재배지로 손꼽힌다. 도시 전체가 자연과 어우러진 가케가와 시가 추구하는 슬로시티 이념은 총 8가지로 나뉘며 이는 전 가케가와시의 시장인 '신무라 준이치(棒村純一)'에 의해 제시됐다.

 

첫 번째 ‘Slow pace’는 사람들의 건강 증진과 교통사고를 없애기 위함에 있다. 교통수단과 자동차 중심 사회에서 보행 사회로 변화시키며 걷기의 중요성을 깨우치는데 의미를 둔다. 두 번째 ‘Slow education’은 학벌 중심 사회를 지양하고 여유 있는 대기만성형 교육의 가치를 알린다. 또 한 쪽 분야로 치우치지 않고 예술문화와 취미생활을 즐기며 살아가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의미를 둔다. 세 번째는 ‘Slow food’. 이는 일식이나 다도처럼 일본 전통 식문화와 지역 유기농 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요리하는 등 고유의 식생활을 지켜나감에 있다. 네 번째 ‘Slow house’는 획일화된 아파트 대신 전통 기법으로 지어진 100년 이상의 일본 목조주택을 사용하며 지구 온난화 방지를 추구한다.

 

다섯 번째 ‘Slow industry’는 마을 주민들이 농림업에 정성을 들여 산림을 보존하고 오랜 시간에 걸친 순환형 농업을 실행하며 시민농원같은 그린투어리즘(Green Tourism)’을 보급한다. 그린 투어리즘은 녹색관광을 의미하며 농촌의 자연경관과 전통문화, 생활, 산업을 매개로 도시민과 농촌 주민 간의 교류로 추친되는 여가활동을 의미한다. 주로 특산물과 음식 상품을 개발하고 농가로 숙박시설을 제공하는 등 농업 외 소득을 증가시키려는 농촌의 관광전력이다. 여섯 번째 ‘Slow aging’은 아름답게 늙으며 평생 자립을 목표로 하며 일곱 번째는 일본 옷과 유카타 등 전통 직물을 소중히 하는 'Slow wear'이다.  마지막으로 ‘Slow life’는 위에 언급한 7가지 생활 철학의 집약체로 자원과 에너지를 절약하며, 자연과 함께 충만하고 느리게 흘러가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이뿐만 아니라 신무라 준이치 전 시장은 도시로 떠나는 도심 집중화를 막지 않으면 지방의 발전을 이룰 수 없다며 고유의 평생학습 이론을 세웠다그는 지역과 부모를 존경하는 교육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며 평생학습도시의 뼈대를 세웠고 학교라는 배움의 장 외에 마을 만들기 개념과 연결시킨 소외지역 마을 만들기’, ‘인재 만들기등의 교육을 실시했다. 이는 가케가와시를 평생학습 인문도시로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전라남도 신안군에 위치한 증도는 갯벌 염전이 세계 슬로시티로 지정되는데 큰역할을 했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우전해변도 증도만의 볼거리다. 증도는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지만 차 없이는 접근이 어렵다. (사진=한국슬로시티본부)



신안 증도 염전에서 염전 체험을 하고 있는 방문객들. (사진=한국슬로시티본부)


국내의 경우 슬로 라이프는 대부분 지방정부의 주도 하에 이뤄지지만 가케가와시는 '관 주도(정부나 관청이 주체가 되어 어떤 일을 이끌고 나가는 일)'가 아닌 민간단체들이 힘을 모아 추진하는 '민 주도'로 구현된다. 국내는 특정 브랜드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고 관광사업 치중에 치우치는 반면, 국외의 경우에는 기존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데 비중을 두고 있다. 도심과 슬로시티 간의 거리 차도 크다. 국외는 도시와 굉장히 근접해있는 반면, 국내는 수도권으로 근접할수록 땅값이 높아지고 외부자본이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슬로시티를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국내에서 슬로 시티로 지정된 곳을 보면 도심과 동 떨어진 전라남도 신안 증도, 완도 청산, 경상남도 하동처럼 지방 도시거나 강원도 영월 김삿갓 마을처럼 국토의 끝에 위치 해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이제 수도권 집중화와 경제발전만을 위한 무분별한 생산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질 만능주의, 생산성 만능주의 같은 사회상은 사람을 정신적으로 지치게 만든다. 문화, 예술 등 인문을 두루 갖춘 가케가와시를 참고해 지역이 가진 고유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기며 지속가능한 도시가 되도록 노력하는 전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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