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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되나요?

성기노 기자 |2020-07-0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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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요즘 자전거를 자주 타다 보니 한강 고수부지에서 여러 가지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한강 자전거 전용도로의 속도제한은 20km. 하지만 이것은 서울시청 공무원들이 만든 책임 면피용 선전도구일 뿐 누구도 이 제한사항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지 않는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는 속도위반 카메라에 걸리면 벌점과 함께 과태료 등이 부과되기 때문에 비교적 잘 지켜지는 편이다.

 

하지만 자전거 전용도로에서의 속도위반은 아무런 제재가 없다. 지키는 사람은 지키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해도 되는 숫자 팻말에 불과할 뿐이다. '자도'의 속도위반은 사고 아니면 행운으로 나뉘는 갈림길일 뿐이다. 동호회 회원들이 시베리아 횡단 기차만큼이나 긴 꼬리를 물고 이른바 팩라’(pack riding)를 할 경우 웬만한 라이더들은 양보를 해준다. 그들이 멋져서가 아니라 생명에 위협을 느껴 할 수 없이 길을 터주는 것이다. 이에 팩라들은 더 무섭게 추월을 감행한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것이 권리인 줄 착각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라이더들끼리 충돌하는 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20km의 곱절 이상 속도를 내며 무한질주를 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터준 길 위를 뽐내며 달리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호의와 배려가 깔린 소중한 길이라는 걸 모른다. 오히려 호의를 베푼 사람들을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대하는지 고맙다는 말은커녕 쌩쌩 제 갈 길을 간다. 최근 자전거 동호회의 글들을 보면 한강 자도를 로 표현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라이딩을 나가면 119구급대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좀 과하게 표현했다 싶지만, 멀리서 보면 너무도 평화로워 보이는 한강 자전거 도로에서 직접 페달링을 해보면 5분도 지나지 않아 바로 느끼게 될 것이다.

 

속도도 속도지만 최근 들어 또 하나 내 귀를 의심케 하는 것은 바로 음악을 크게 틀고 라이딩을 하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관악산 자락에 살 때 가끔 뒷산을 산책하고는 했다.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뽕짝 노랫소리에 침잠해지던 마음이 몇 갈래로 나눠지던 때가 있었다. 고요한 산속에서 인간소음을 깬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이 든 할아버지들이었다. 때로는 허리춤에 라디오를 차고 걸어가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그러면 짜증나는 뉴스를 하릴없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듣고는 했다. 그래도 그때는 열심히 인생을 살아온 노년들의 귀여운 일탈쯤으로 치부해도 됐다. ‘열심히 일한 당신, 더 크게 들어라는 생각으로 그냥 지나치고는 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그런데 요즘 한강 자전거 도로에서 자주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귀엽게 봐줄 정도가 아닌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귀가 어두운(이렇게라도 이해를 해보려고 하는데) 할아버지들이 음악을 크게 틀고 자전거를 타는 것 정도였지만 이제는 그 소음을 만드는 대열에 나이구분은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 젊은층들은 비트가 강한 랩을, 중년들은 세미 트로트 등으로 각양각색의 음악들이 자전거도로 위에 뿌려지고 있다. 물론 각자 열심히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 정도의 스트레스 해소는 이해해줄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게 받아들이기에는 한강 자전거 도로 위를 라이딩 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다. 몇 년 전 같으면 그래도 남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는 음악소리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대놓고 다른 사람들의 귀를 자극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일방적인 소음은 내게, 내가 하고 싶은데 무슨 상관이냐는 노랫말로 들리기 일쑤다. 짜증이 동반되는 그 소음에 내 라이딩 km 숫자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동문회 카톡방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접하면서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정치글은 단체 카톡방의 금기사항 중 하나다. 5000만 인구 한명 한명은 그들의 DNA만큼이나 다양한 정치적 견해와 식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동문회같은 단체 방에서는 모임을 갈기갈기 찢어놓기 딱 좋은 정치 논쟁은 대부분 금지시키고 있다. ‘이것이 정의인데 왜 그것을 몰라주느냐는 일방적인 논리로 무장한 한 동문의 반복적인 글을 보면서, 정치 이전에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가 정치적 소신이든, 경제적 이해관계에서든, 생각없이 뿌린 글들은 동문 선.후배들의 배려와 이해 위에서 용인된 것이지, 인정되고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이쯤에서 그만하자'는 선배의 호소도 가볍게 물리치는 그의 일방적 주장이 논리와 소신으로 포장되는 정치라면, 나는  단호히 거부한다. 무엇이 진정한 정의이고 소신인지 알 수도 없다. 

 

속도를 위반하는 사람들에게 양보를 하는 것이 그들의 권리로 둔갑하는 순간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법률과 제재가 필요할 뿐이다. 남의 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싸구려 음악’(남에게 피해를 주는 소음이기 때문에)을 크게 틀으며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층간소음 폭력 이상의 갈등과 마주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그래도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타인의 정치적 성향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주장만이 정의라고 판단하는 그 일방적인 독선이다. 자전거 속도위반으로는 사람의 몸을 다치게 하지만, 생각의 독선은 타인과 사회의 정신마저 멍들게 하는 가장 악성의 폭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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