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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자전거 한대 장만하시겠습니까?"

성기노 기자 |2020-06-1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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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주말마다 자전거를 탑니다. 정서진도 가고 파주도 가고 팔당도 가고, 호기심에 이곳저곳을 신나게 다녀봅니다. 엔진은 아직 동네마실용인데, 마음은 벌써 국토종주에 꽂혀 있습니다.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속으로 반문해 보기도 합니다. 그래도 남들은 10개가 넘는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있는데, 나에게도 작은 소망카드 하나가 만들어져 뿌듯합니다. 언젠가는 버킷리스트의 항목 하나를 지우는 날이 오겠죠.

 

10여년만에 다시 다녀본 한강의 자전거 도로는 많이 변했습니다. 없던 군함(서울함)이 정박해 있기도 하고, 브롬톤같은 갬성미니벨로를 타고 유유자적 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전거를 푸른 잔디에 눕혀놓고 스타벅스 캠핑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연인들도 많이 보입니다. 그룹을 지어 단체로 긴 꼬리를 물고 질주하는 팩 라이딩도 눈에 많이 띕니다. 싱글 라이더 눈에는 부럽기만한 장관입니다. 친한 사람들끼리 끌어주고 밀어주고 즐겁게 라이딩을 하는 모습을 유튜브를 통해 자주 보면서 생전 달지 않던 폭풍감성 댓글을 달기도 합니다.

 

자전거는 이제 단순한 운동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중년 아저씨들의 작심삼일 다이어트의 주된 소재였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10여년 전만 해도 몸에 딱 달라붙는 저지복을 입고 한강을 누비는 아재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지금은 여성 라이더들이 특히 많아진 것 같습니다. 자전거를 통해 문화적 감수성을 드러내는 당당한 모습이 멋지게 보입니다. 자전거는 감성을 연결하는 체인이 되기도 합니다. 미니벨로를 주로 타는 동호회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나이층이 있다고 합니다. 여유와 느림이 뚝뚝 묻어나는 미니벨로의 감성을 나누기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자전거에 최소한의 캠핑 장비를 꾸려 근교로 12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연인들은 퀴퀴한 카페에서 벗어나 미니벨로를 타고 한강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십니다. MTB를 타고 이산 저산을 넘나드는 동호인들을 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이처럼 자전거는 사람들을 자연으로 이끌어주는,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구동계가 되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곳이 어디겠습니까. 불가피하게 출퇴근을 위해 도심으로 가지 않는 이상, 자전거를 타고 우리가 갈 곳은 자연밖에 없습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호모사피엔스는 2008년 어느 시점부터 공식적으로 도시 종()이 됐다고 합니다. 그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인구가 최초로 시골보다 도시에 더 많이 산다고 발표했습니다. 2016년 미국에서는 100년만에 처음으로 도시가 교외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도심속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활동무대를 도시로 옮기는 사이 인간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도시공간을 만들기 위한 계획과 자원과 기반시설은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콘크리트 덩어리속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죠. 우리나라 2019년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아파트 거주비율이 50.1%에 달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거주 비율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사 희망 주택 유형을 조사한 결과 67.1%가 아파트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201864.3%가 아파트로 이사할 계획이라고 한 것보다 높은 비율입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경향성을 보여주는 조사결과입니다.

 

자연이라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사치가 될 정도로 우리들의 의식속에 자연은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 사회심리학자 니스벳은 우리는 자연에서 진화했다. 자연과의 연결이 이렇게 단절된 것은 비정상이다라고 말했습니다사람들은 뭔가를 잃어버리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턴가 자연을 한번 접하려면 1년 전부터 휴가계획에 넣어 어렵사리 가야하는 연중행사가 돼 버렸습니다. 이런 점에서 자전거는 그 어렵사리라는 단어 하나를 제거해줄 소중한 자연 연결 소로가 되고 있습니다.

 

자전거 재 입문 한달만에 나도 미니벨로에 꽂혀 폭풍검색 끝에 브롬톤 한 대를 지르려다 꾹 참았습니다. 명필이 붓을 가리지 않듯, 좋은 자전거 엔진도 바퀴를 가리지 않겠지만 장비병이 벌써부터 도지고 있는 듯합니다. 자려고 누우면 자이언트 프로펠 디스크 모델의 쌔끈한 몸체가 눈에 아른거립니다. 하지만 비싼 자전거를 몰래 샀다가 와이프의 등짝 스매싱을 맞을지도 몰라 주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내게 자연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험난하기만 하네요.

   


(사진=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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